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보이는 아파트가 우리집이다. 이 거리가 맨몸으로 날씨좋을때 걸으면 딱 좋은 거리인데, 요즘 날씨에 뭐하나 들고 타려면 부담스러운거리다.


오늘은 남편의 출근준비를 돕고 아침을 먹이고 차로 3분거리인 지하철 역으로 배웅을 해줬다. 차로 3분거리와 10분거리의 차이만있을뿐 내내 출근길을 함께 해주던 엄마가 매일같이 해주시던 일이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 아 이건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해줄수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이었다. 


집안일을 하다가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라는건 퇴근하고 그 어딘가로 가는것과는 또다른 번거로움이 있다. 민낯에 집에서 입는 편한옷을 벗어내고 잠시나마 세상시선에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단장하고 나간다는건 꽤나 귀찮은 일. 풀메이크업에 드레스업의 수고스러움이 아닌 최소한의 부끄러움만 벗어내는것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해준다는건 짜증만 불러올일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랄까 상투적인표현이겠지만 행복하다고 해야하나. 


결혼하고보니 별것에도 엄마 생각이 나고 엄마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직장인에서 주부가 되었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할때도 인터넷상 회원가입을 할때도 나의 직업란은 이제 무직이 되었다. 주부라니 생각할수록 낯선 단어. 


낯선 단어도 단어지만 가끔 더 낯선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젠 소득이 없이 남편 소득에 기대 살고 있다는 자격지심이 드러날때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은데 괜시리 꼬인마음이 드러나기도 하고, 혼자서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된것은 이러이러해서 였다며 합리화도 했다가 전에는 무심코 빼서 썻던 카드 사용에도 눈치가 보이고 하는걸 보면 중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내가 이런생각이 드는것은 어쩌면 양심이라는게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생활비야 생활비라지만 요즘 치과치료를 시작하면서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눈치봐야지. 아마도 내가 이런부분에 대해 신경쓰고 있다는걸 알면 남편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것이다.


그래도 낯선단어에 적응해가면서 서울살이를 잘해나가는데는 남편의 힘이 크다. 얼마전 새벽까지 야근해야한다는 남편때문에 밤 9시가 넘어서 사무실로 갔던적이 있었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나에겐 바람쐬는 즐거움도 있었던 길이었는데, 남편은 굉장히 고마워했고 결혼한건 정말 잘한일이라며 즐거워했었다. 또 하루는 퇴근하고 소파에서 무릎베게를 하고 누워있다가 요즘 너무 행복한데 행복이 깨질까봐 괜히 걱정된다면서 웅얼대길래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퇴근하고 집에오면 내가 있어서란다. 이말을 듣고 나는 굉장히 미안해졌었다. 나는 너처럼 그렇게 작은게 깨질까봐 걱정된다는게 행복인줄 몰랐어. 반성합니다아.



반성의 의미로




이렇게 셔츠카라가 젖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걸 잊지 않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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